베르테르 효과 동조자살, Werther effect

왜 자살 사건이 크게 보도되면 자동차 사고가 급증하나?


자살 사건이 신문 등의 미디어를 통해 크게 알려지면 이후 모방 자살이 증가하는 현상.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인기를 끌자, 유럽 전역에서 소설의 주인공인 베르테르처럼 권총 자살하는 사건이 확산된 현상에서 유래했다. 주로 유명인이나 충격적인 자살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 비슷한 형식의 자살이 늘어난다는 이론으로, 자살에 대한 언론미디어의 사회적 역할을 주장하는 근거가 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David P. Phillips)는 1970년 「사회적 행위로서의 죽음(Dying as a Form of Social Behavior)」이라는 박사학위 논문을 출판하면서 자신의 전 생애를 죽음이란 연구 주제에 바치기로 했다.

1974년 필립스는 1947~1968년의 기간에 미국에서 발생한 자살 통계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 자살이 신문의 전면 기사로 다루어진 후 2개월 이내에 평균 58명의 자살 사건이 다른 때보다 증가되어 나타나는 현상을 관찰했다. 이러한 자살 건수의 증가는 특히 미디어가 요란하게 다루었던 지역에 국한되어 나타났다. 그 이전에 비해 이후에 각종 사고(비행기 사고, 자동차 사고 등)가 급증했으며, 이러한 사고에서 인명 치사율은 보통 때의 3~4배에 이르렀다. 필립스는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을 사고를 가장한 자살로 추정했다.

필립스는 이러한 모방 자살(copycat suicide) 현상을 독일의 문호 괴테(Goethe, 1749~1832)가 1774년에 펴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The Sorrows of Young Werther)』에서 주인공 베르테르가 연인 로테에게 실연당한 뒤 권총으로 자살하는 내용을 모방한 자살이 전 유럽으로 확산된 것에 비유해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라고 이름 지었다.

당시 자살자들은 소설 속의 베르테르처럼 정장을 하고, 부츠, 파란 코트, 노란 조끼를 착용한 뒤 책상 앞에 앉아 권총 자살을 하는 등 베르테르의 모든 걸 흉내냈다. 괴테는 독자들에게 제발 베르테르를 따르지 말라고 호소하기도 했지만 별 효과가 없어 이 책은 한동안 이탈리아, 독일, 덴마크 등에선 금서가 되었다.

이 '베르테르 효과'는 주인공의 특성을 닮은 사람들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젊은이의 자살을 크게 보도하면 젊은이들의 자살과 차량 사고 사망률이 높아지고, 노인의 자살과 사망률이 높아지는 식이다. 베르테르 효과는 똑같이 고민에 빠진 다른 사람의 행동을 근거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경우로, 사회적 증거의 원칙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적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Robert Cialdini)는 '베르테르 효과'가 나타나는 이유를 사람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서 적절한 행위가 무엇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자기와 유사한 처지에 있는 비슷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관찰하고 단서를 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살 사건이 크게 보도되면 항공기, 고속버스 여행을 삼가라고 조언했다. 이는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치알디니는 "그들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자신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가족들에게 수치심과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부양가족이 보험을 타게 하기 위해) 자살한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하지 않으며, 따라서 의도적으로 자동차 사고나 비행기 사고를 몰래 일으킨다. 민간 비행기 조종사들은 비행기를 추락시키고, 자동차 운전사들은 갑자기 가로수를 들이받는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말 끔찍한 것은 함께 목숨을 잃는 무고한 사람들의 숫자이다.……나는 이러한 통계자료를 보고 영향을 받아 신문 1면에 자살 기사가 나올 때마다 기록을 해두고, 사건이 난 이후에는 행동을 조심했다. 나는 특히 자동차 바퀴 뒤쪽을 조심했다. 그리고 비행기를 오래 타야 하는 장기 출장은 꺼렸다. 만일 그 기간 동안 비행기를 타야 할 일이 생기면 평소보다 많은 금액의 비행 보험에 들었다."

이에 대해 다른 심리학자 로렌 슬레이터(Lauren Slater)는 "하지만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모방 자살은 납득할 수 있어도 베르테르 효과나 사회적 신호가 너무 강하여, 가령 커트 코베인이 죽었다고 해서 민간 비행기 추돌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니 이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자살 충동을 느꼈어도 그것을 단 한 번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기차나 비행기 조종사가 1면에 난 자살 기사에 이끌려 다른 생명들까지 앗아갈 정도로 충동적이 될 수 있다고?"

이 논쟁은 두 심리학자에게 맡겨두고, 우리는 모방 자살을 인정하는 선에서 베르테르 효과를 이해하면 되겠다. 한국은 어떤가? 일부 전문가들은 2003년 8월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정몽헌의 자살 이후 부산시장 안상영, 대우건설 사장 남상국, 전남지사 박태영 등 유명 인사들의 자살이 잇따른 걸 '베르테르 효과'로 추정했다.

2005년 2월 22일 영화배우 이은주의 자살도 '베르테르 효과'를 낳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서울중앙지검은 2005년 2월 22일부터 3월 17일까지 관할 지역인 서울 시내 7개구에서 발생한 변사 사건을 분석한 결과 하루 평균 자살자는 2.13명으로 그전의 0.84명에 비해 2.5배로 늘었으며, 이은주의 자살을 기점으로 이전 53일 동안 45명이 자살을 한데 반해 이후에는 23일간 49명이 자살했다고 밝혔다. 또 20대 자살자 숫자가 이은주의 자살 이후 15명(30.6퍼센트)으로 그전의 7명(15.5퍼센트)에 비해 급증했으며, 과거에는 의사(목을 매 죽음) 비율이 절반을 조금 넘는 53.3퍼센트였지만, 이후에는 79.6퍼센트로 집계되어 10명 중 8명꼴로 이은주와 비슷한 방식으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2014년 3월 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김남국 교수팀은 유명인 자살에 대한 언론의 기사 수와 모방 자살 증가 수를 조사한 결과 유명인 자살에 대한 언론 보도와 모방 자살의 상관관계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고 밝혔다. 연구팀이 1990년부터 2010년 사이 자살한 유명인 중 언론에 많이 보도된 15명에 대한 신문과 텔레비전 기사량, 통계청 모방 자살자 수를 정량적으로 모델링해 분석한 결과, 상관계수가 0.74로 유의미한 값이 나왔다. 상관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두 변수 간 연관성이 높다. 특히 2008년 자살로 숨진 탤런트 최진실의 상관계수가 가장 높았다. 자살에 대한 일별 신문 보도량과 일별 모방 자살의 상관계수가 0.71, 텔레비전 보도량과 모방 자살의 상관계수는 0.76으로 나타났다.

세계보건기구와 국제자살방지협회는 자살 보도와 관련한 연구, 전문가 의견을 종합해 2001년 '자살 보도에 관한 미디어 지침'을 마련하고 2008년 이를 개정했다. 또 국내에서도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자살예방협회가 공동으로 2004년 '자살 보도 권고 기준'을 제정했으며, 이어 2013년 9월 보건복지부는 '자살 보도 권고 기준 2.0'을 발표했다.

'자살 보도 권고 기준 2.0'의 주요 내용은 자살 보도 최소화, 자살 단어 사용 자제 및 선정적 표현 피하기, 자살 관련 상세 내용 최소화, 유가족 등 주변 사람 배려하기, 자살과 자살자에 대한 미화나 합리화 피하기, 사회적 문제 제기 수단으로 자살 보도 이용 않기, 자살로 인한 부정적 결과 알리기, 자살 예방에 관한 다양하고 정확한 정보 제공 등이다.

2013년 12월 자살예방행동포럼 창립대회에서 '자살과 언론미디어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발표한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유현재는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에게 카메라부터 들이대는 미디어의 자세와 자살 보도 권고 기준에 반하는 보도에 대해 지적했다. 그는 "'수면제 45알을 한 번에 먹었다' 등 방법을 자세하게 적거나 '빚을 갚지 못해 자살을 선택했다' 등 자살이 해결책인 듯 제시하는 언론 보도가 잘못됐다"며 "보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살률에 큰 차이가 있어 각 미디어는 '파파게노 효과'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파게노 효과(Papageno Effect)는 자살에 대한 언론 보도를 자제하면 자살 충동을 예방할 수 있다는 긍정적 효과를 뜻한다. '파파게노'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 나오는 캐릭터인데, 연인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비관해 자살하려 할 때 요정의 도움으로 죽음의 유혹을 극복하고 연인과 재회한다는 일화에서 유래된 말이다.

하루 평균 40명이 자살을 하는 한국은 '자살 공화국'이요, 자살은 '국민병'이 되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 회원국 중 10년째 자살률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언론은 자살에 대해 앞다퉈 "이대론 안 된다"를 외치고 있지만, 베르테르 효과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언론도 문제의 공범일 수 있다는 데에 눈을 돌려야 할 것 같다.

<저작권자 ⓒ 한청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채석일 기자 다른기사보기